얼굴이 너무 천재 5

2023. 3. 4. 21:08:: Library/번역

 

내 말끝에 벨보가 사담을 했다. 「모처에서 내가 겪은 일이 생각나는군. 해 질 녘이 되면 어둑어둑한 길을 따라, 이름이 <레모>가 맞는지 잘 모르겠지만 <레모>라고 하자고. 파시스트 소년단 <발릴라>의 단원인 레모를 구경하러 가고는 했네. 까만 콧수염, 까만 고수머리, 까만 셔츠 차림이었는데 이빨까지 충치로 썩어 새까맸네. 그런데 레모가 어떤 처녀에게 키스하는 거라. 이빨이 새까만 레모가 그 아름다운 금발 처녀에게 키스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만 구역질이 나더군. 그 처녀가 어떻게 생긴 처녀였는지 기억은 안 나네만, 어쨌든 내게는 그 처녀야말로 동정녀이자 창녀, 말하자면 『파우스트』에 나오는 <구원의 여성> 같은 것이었네. 레모가 그런 처녀에게 키스를 했으니 구역질이 났을 수밖에」 벨보는 반어적인 분위기를 돋우느라고 부러 어조를 착 가라앉히고 있었다 이것은 벨보가, 자기의 추억이 불러일으키는 순정에 감격하고 있음을 의식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나는, 검은 여단에 소속되어 있을 터인 레모 같은 자가 어째서 우리 마을을 버젓이 나돌아다닐 수 있는지 그게 궁금했네. 당시 우리 마을은 파시스트가 장악하고 있지도 않았거든. 그런데 누군가가 내 귀에다 대고 레모는 파시스트의 스파이라고 하는 거라. 어쨌든 어느 날 저녁 나는 레모가 예의 그 발릴라 단원의 복장을 한 채로 같은 처녀에게 여전히 새까만 이빨을 들이대며 키스하는 걸 보았네. 조금 다른 게 있었다면 그날 저녁의 레모 목에는 붉은 수건이 감겨져 있었고 셔츠 색깔이 카키색으로 바뀐 것뿐이었네. 그러니까 레모는 가리발디 여단으로 전출되었던 것이네. 사람들이 레모를 두고 입이 마르게 칭찬을 하자 레모는 실제로 자기에게도 <전사의 별명>이 있다면서 자기의 별명은 <X9>라는 거야. 알렉스 레이먼드의 만화에 등장하는 간첩의 이름이잖아? 레모는 만화 『아벤투로소(모험담)』를 읽고 본떴을 거야. 브라보 <X9>…… 사람들은, 하여튼 레모를 응원했지. 그런데 사람들이 그러면 그럴수록 내게는 레모가 더 싫어지는 거야. 왜? 레모가 군중의 묵시 아래 처녀를 차지하고 있었거든. 그 군중의 무리 중에서 레모가 민병대로 숨어든 파시스트의 스파이라고 주장한 사람 역시 그 처녀를 차지하고 싶었던 사람일 거라. 그래서 <X9>에 대한 의혹을 퍼뜨렸던 거지……」
「그래서요?」
「이런다니까. 카소봉, 당신, 내 인생에 왜 그렇게 관심이 많아?」
「자기 이야기를 민담 구연하듯이 하니까 그렇죠. 민담이야말로 집단 상상력의 산물이 아닌가요?」
「적절한 지적이기는 하네. 하여튼 어느 날 아침 내가 보고 있으려니 <X9>가 마을을 지나 들판으로 나가는 거야. 모르기는 하지만 처녀와 데이트 약속이라도 되어 있었던 모양이지. <X9>는 키스하는 데 만족하라 수 없었을 거라. 어쩌면 처녀에게 새까맣게 썩은 자기 이빨과는 달리 자기 물건은 멀쩡하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미안하네. 아직도 그 친구 생각만 하면 기분이 안 좋아진다네. 어쨌든, 파시스트들은 들판에 매복해 있다가 우리의 <X9>를 붙잡아 마을로 데리고 돌아와서는 다음 날 아침 5시에 총살해 버리더라고」
  침묵. 벨보는, 기도하듯이 마주 잡고 있던 자기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한동안 그러고 있던 그는 이윽고 그 손을 풀면서 말을 이었다.
「총살당한 게 뭐겠어. 스파이가 아니었다는 증거 아니겠어?」
「그 이야기의 교훈이 뭐죠?」
「이야기에 꼭 교훈이 있어야 하나?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교훈이 있는지도 몰라. 뭔가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대가로 바쳐야 할 때도 있다는 거겠지」

 

(Foucault's Pendul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