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26. 14:08ㆍ:: Library/번역
소리굽쇠는, 누군가가 진동시키지 않으면 울리지 않는다.
그렇게 당연한 사실을, 한참을 돌아서야 겨우 깨닫게 되었다.
그런 거라면, 마음 속에서, 낮고 둔탁한 소리를 울리는 이 굽쇠를 울리는 것은 누구일까.
누군가, 대답을 알고 있다면 가르쳐 줬으면 좋겠어.
두드리고, 울려서, 차라리 부수어 버리는 것은 누구인지.
제발, 누군가.
*
카나데의 모습이 이상하다고 깨달은 것은 2주 쯤 전부터였다.
타인의 기척에 대해 그다지 민감한 편이 아닌 후미카지만, 적어도 연인의 변화 정도는 빨리 깨닫을 수 있도록 주의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눈치챌 수 있었을 정도의 사소한 이변. SOS 신호라고 인식하기에는 너무나 희미했다.
무엇인가가 있었던 것은 알 것 같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까지는 알아챌 자신이 없어, 차를 권하며 이야기를 들어 보려고 했지만 불발로 끝났다.
「미안해. 내일은 슈코랑 놀러 갈 예정이 있어서」
「그렇......습니까. 안색이 좋지 않으신 것 같아 걱정이었습니다만, 슈코 씨네와 즐겁게 보내면서 억눌려 있던 것을 발산하는 것도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애매하게 미소짓는 카나데에게 그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후미카에게는 없었다.
하지만, 만약 이 때, 후미카의 사전안에 「어리광」이라고 하는 말이 있었더라면. 「연인보다 친구를 우선시하는 것인가요」 하고, 등을 돌리는 포즈를 취하는 기술이 있었더라면. 자기보다 젊은이다운 놀이를 알고 있을 슈코들에게 맡기는 것이 정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역시, 친구로 돌아가자」
미소와 함께, 이런 말을 들으면서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차를 권했던 그 날 이후, 메일의 답장이 없었다. 그래도 후미카는 아침에 일어 났을 때와 밤에 잠들기 전 반드시 메일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겨우 답장이 와서, 며칠 만에 카나데를 만나는 것, 집에 와 주는 것에 기뻐하고 있었다.
하지만, 카나데는 집에 들어올 기색이 없이 현관 앞서 멈춰선 채 갑자기 이별을 고했던 것이다.
이유를 물어도 그저 애매하게 고개를 저으며, 그래도 매달리자 「나로서는 후미카를 불행하게 할 뿐이야」 「당신은 좀 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과 사귀어야 해」 등의 요령부득인 대답만 늘어놓을 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말의 숨겨진 뜻을 짐작하는 것에 자신있지 않은 후미카로서는, 전혀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카나데의 눈에 걸린 어두운 안개는, 후미카의 곤혹 정도로는 닦을 수 없었다.
「후미카를 더이상 상처입히고 싶지 않아...... 아니, 그런 건 단순한 변명이구나. 내가 겁쟁이였던 것 뿐. 후미카는 아무것도 잘못한 것 없어. 그러니까, 당신이 웃는 얼굴을 흐리게 할 필요는 없어. 앞으로도, 같은 사무소의 아이돌로서 같이 노력하자」
카나데가 평소의 미소대로 손을 뻗어 왔다.
극도의 혼미 상태면서도, 후미카의 몸은 축 내리고 있던 자신의 양손을 딱딱하게 굳게 했다. 그 손를 잡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짐작했던 것이다. 헝크러진 머리의 한쪽 구석에서, 이것이 생존 본능이라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카나데는 후미카의 의도와는 다른 의미의 <거절> 의 사인이라고 해석했다.
「그렇, 구나. 미안해. 제멋대로인 것도 정도가 없었네. 그럼, 적어도 같이 일하게 될 때는 인사 정도는 하게 해 줘」
마지막으로 또 하나 웃는 얼굴을 만들며 뒷꿈치를 돌리는 카나데의 등을, 후미카는 역시 아무 말도 못한 채 응시하고 있었다.
*
그것은, 카나데가 후미카에게 이별을 고하기 한 달 쯤 전의 밤.
카나데의 집에 놀러 와 있던 슈코가, 갑작스레 이런 질문을 했다.
「저기말야, 카나데네는, 어느 쪽에서 고백했어?」
방금 전까지 피부를 겹치고 있던 상대에게 묻는 내용으로는 조금 부적절한 느낌이지만, 카나데와 슈코 사이에는 그것도 용서되는 관계가 구축되어 있었다.
「뭐야, 갑자기」
둘이 나란히 엎드려, 얼굴만 마주보게 있는 상태로 한번 뒹굴자, 카나데의 방 침대는 그것만으로 가득 차 버렸다.
「아니, 별 생각없이? 졸려질 때까지의 잡담 같은 거―」
「그런 것 치고는 상당히 핵심을 찌르는 화제네」
「그런가. 연애 이야기는 정석이잖아?」
말하면서 슈코는 조금 상반신을 일으켜, 베개를 껴안으며 턱을 괴었다. 그 눈매와 입가에 순서대로 시선을 보내며, 카나데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더 하고 싶으면 그렇다고 말해?」
「음 ―. 눈치가 좋은 애네. 그렇지만 카나데의 이야기도 신경 쓰이는데―」
슈코가, 카나데의 아직 열을 품은 어깨에 입술을 떨어뜨리자, 카나데는 무심코 작게 소리를 높였다.
「있지, 가르쳐줘. 뭐라고 말했어?」
엎드린 채로 카나데의 위를 덮고 등을 가볍게 깨물면서, 슈코는 그렇게 물었다.
단 아픔을 주면서, 다른 여자를 생각나게 한다. 슈코에게는, 그런 것을 즐기는 나쁜 취미가 있었다.
특히 이번에는 뒤로 돌아갔기 때문에 슈코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카나데의 뇌리에는 좋든 싫든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카나데의 연인인, 후미카의 구김 없는 미소가.
어떤 말도, 소리도, 흘리지 않도록 카나데는 입을 닫았다.
「안 가르쳐 줄거야―?」
「.......」
「무시인가. 안 가르쳐 주면 츄 해버릴 거야」
「그건 안돼!」
억지로 몸의 방향을 바꾸자 히죽히죽 웃는 슈코의 얼굴과 마주쳐, 카나데는 당황해 한 손으로 입술을 가렸다.
「와하―. 역시 뿌리가 성실한 카나데쨩. 고집이 세다니까」
입술 대신에 뺨에 입을 맞추며, 슈코의 어조는 더욱 활기를 띄었다.
「뭐, 둘만의 소중한 추억을 폭로하는 것은 촌스럽지」
「이런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이름을 꺼내는 시점에서 충분히 촌스러워」
「응―? 이 정도의 괴롭힘은 허락해 주면 좋겠네. 그렇게 녹은 눈으로 연상의 언니를 유혹해 놓고, 입술만은 연인를 위해서 지킨다니. 갸륵하다고 과시하는 거야? 그 연인이랑은, 아직 키스 한번밖에 안 한 주제에」
까득, 하고 둔탁함을 품은 소리가 카나데의 귀를 찌르는 것과 동시에, 쇄골에 강한 아픔이 퍼졌다.
「아팟!」
「아, 참아」
미안한 기색도 없이 말하는 슈코를, 카나데는 정면으로 노려보았다.
「왜 그렇게 오늘은 초조해?」
「글쎄? 생리 전이라 그런가. 어쩐지 오늘은 괴롭히고 싶은 기분이라. 그래도, 받아들여 줄 거지?」
피차일반이니까.
그 말을 마지막으로, 카나데는, 입술에 키스하는 것 이외의 모든 것을 허락했다.
슈코와는, 그런 약속이다.
요령 좋고, 세상살이 능숙할 듯한, 심지어 연애조차도 가볍게 다룰 것 처럼 보이는 사람끼리.
정말로 사랑하는 상대에게는 보이지 않는, 보이고 싶지 않은 스스로가 있는 사람끼리.
서로 위로하는 것처럼, 서로 보여주고, 품는다.
하지만, 카나데는, 입술만은 슈코에게 허락하지 않는다. 슈코도, 절대로 자신의 침대에서는 카나데를 안지 않는다.
그 약속만 지키면, 서로 형편이 맞을 때, 좋아하는 대로 기분 전환을 해도 되고, 응석을 부려도 좋다.
그런 약속대로, 자기 마음대로 괴로움을 푼 슈코가 돌아가 혼자가 된 방에서, 카나데는 침대 위에서 무릎을 움켜쥐고 있었다
아직 키스 한번밖에 안 한 주제에.
슈코가 내뱉은 말이 머리 속에서도 가슴 속에서도 울려펴지고 있었다. 너무 시끄러워, 무릎을 움켜쥐고 이마를 무릎에 박아 어떻게든 멈추려고 했지만, 울림은 늘어갈 뿐이었다.
*
발끝에 누군가가 버린 듯한 깡통이 맞았다.
밤길, 혼자서 걷고 있는 슈코에게 차인 캔은, 부당한 취급에 불평하는 것처럼 시끄러운 소리를 울렸다.
그 소리에, 부아가 치솟는다.
슈코의 집의 주변은 좋게 말하면 한적한 주택가지만, 나쁘게 말하면 인적이 드문, 밤에 여성이 혼자 걷기에는 약간 위험한 거리다.
평소라면 이런 시간에 걸어갈 바에는 그대로 카나데의 집에 묵게 해 주지만.
아직 키스 한번밖에 안 한 주제에.
어째서 그런 말을 해 버렸는지. 어째서 이렇게도 초조함만 더해가고 있는 것인지.
대답은, 이미 알고 있다.
요전날, 친가의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던 때부터다.
『너, 제대로 사에쨩 보살피고 있니?』
정기적인 질문에, 「당연하지. 벌레 한마리 안 꼬이게 하고 있어」라고, 이쪽 또한 정형문을 돌려주었다. 평상시라면 그것만으로 정기 연락은 끝나고, 서로의 근황 보고 따위로 이야기가 옮겨가지만, 그 날은 달랐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있잖니 사에쨩, 곧 생일이잖니? 코바야카와 사모님도 슬슬 준비 진행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시니......』
모친의 발언에 슈코는 귀를 의심했다.
「아니아니아니 잠깐만? 생일 돌아와도 아직 열여섯 살인데? 법률적으로야 가능은 하지만」
『물론 바로야 아니겠지. 하지만 전통있는 큰 가게에 시집가는 거라면,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잔뜩 있지 않겠니? 그렇다면 일 그만두게 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 시킬 테니』
그 후 최근에 다쳤다는 슈코의 부친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갔지만, 슈코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사에에게는, 본인에게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은 약혼자가 있다.
그 정보는, 슈코가 도쿄에 나오고 얼마 안 되어 알게 되었다.
경영난이 계속되는 코바야카와 가의 가게의 선전도 겸해 지금은 자유롭게 두고 있지만, 머지않아 큰 가게의 도련님에게 시집보낼 예정이기 때문에, 나쁜 벌레가 붙지 않게 지키고 있으라는 지시가 아울러 전해졌다.
그 무렵에는 이미 슈코의 안에, 사에에 대한 연정이 싹터 있었다. 하지만 아직 싹이 튼 정도였으므로, 이대로 사랑스러운 여동생과 무책임한 언니 같은 관계로 있으려고 했다. 하지만, 아는지 모르는지, 슈코의 은밀한 결의를 날려 버린 것은, 바로 그 사랑스러운 여동생 쪽이었다.
「저, 착한 아이도, 공주님도, 여동생도 싫사와요. 슈코 항의, 슈코 항만의 특별한 사람으로 해 주지 않겠사와요?」
작은 몸을 한껏 떨면서, 직설적인 말에는 약할 터인 그녀가, 있는 힘껏 낸 용기와 흘러넘칠 듯한 눈물을 슈코에게 부딪혀 왔다.
껴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사에와는 형태는 연인 사이가 되었지만, 슈코는 아직, 처음 껴안은 이후, 그녀에게 손가락 한 개도 접하고 있지 않다.
무섭다.
그 생각이, 슈코의 머리에도 마음에도 브레이크를 건다. 작은 몸, 그다지 높지 않은 체온, 어린아이 같은 손, 얇은 입술, 동그란 눈동자, 머리카락 향기, 벚꽃 같은 뺨.
그것을 이 몸으로 맛보아 버리면, 슈코는 평생 그녀의 망령에 얽매이게 된다. 이제 두 번 다시 이 손으로 닿지 못할 망령에.
그럴 바에는 그저, 둘이서 함께 있는 시간을 맛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날마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타이르고는 있지만, 이따금 사에 쪽에서 조심스럽게 발을 딛어 오려고 한다. 그것을 필사적으로 흘려보내며, 오로지 도망치기만 했다.
그리고, 그 욕구나 외로움은, 모두 카나데에게 부딪혔다. 고이고, 부패한 상태로 토해내도, 그녀는 한 몸에 받아들여 주었다.
「피차일반이잖아?」
그 악마의 주문 하나로, 무서울 정도로 간단히.
화창한 아침은 사에와. 끔찍한 밤은 카나데와.
이 관계로 있으면, 아무 문제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사에의 결혼 준비가 시작된다고 들은 순간, 카나데에의 집착이 강해졌다.
사에에게는 집착할 수 없다. 해봐야 소용없는 것은 알고 있다. 그 아이는, 부모님이 「도와 주렴」이라고 말하면 거절하지 못한다.
언젠가 절대 끝나고 말 관계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또 하나 카나데와의 관계에 매달릴 수 밖에 없다.
아직 키스 한번밖에 안 한 주제에.
스스로의 추악함, 약함에 구토가 났다.
슈코는 방금 차 버린 깡통을 쫓아가 한 번 더, 이번에는 분명한 의지로 전력으로 걷어찼다.
역시, 부아가 치솟을 뿐이었다.
*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나, 슈코는 후미카에게 불려갔다. 후미카에게서 메일이 오는 것 자체도 드문 일이지만, 일대일로 만나자는 권유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이야기라,사무소의 회의실을 빌렸다고 쓰여 있었다.
(아― 결국엔 들켜버린 건가?)
그런 예상을 하며, 후미카로부터 「이제 카나데 씨와의 그러한 관계는 그만두어 주셨으면 합니다」 같은 요청을 들으면, 솔직하게 응하는 시뮬레이션도 했다.
자신과 사에와는 달리, 카나데와 후미카는, 본인들의 노력으로 계속해 나갈수 있는길이 있으니.
카나데에의 집착은 자각하고 있던 터이지만, (뭐 슈코쨩이니까, 또 다음이 있겠지) 하고, 헤어질 여유는 아직 있었다.
실제로 사무소의 회의실에서 후미카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이처럼....... 전혀 짐작가는 바가 없는 채, 이별을 전해 들었을 경우, 어떠한 말을 택하는 것이 정답일까요」
설마하니, 하필이면, 자신의 연인의 바람 상대에게 상담을 걸어 올 만큼 둔하다고는 역시 슈코로서도 예상 외였다.
설마하던 전개에, 슈코의 머리속에서 누군가가 속삭였다.
(헤어지는 이유, 나 때문이라는 것 안 말했나 보네)
진지하게, 어찌할 바를 모르며, 눈밑에 기미까지 만들고 있는 친구를, 한층 더 곤혹과 불신의 소용돌이로 밀어 떨어뜨릴 수 있다.
곤란한 결과에 자신을 의지해 와 주었다고 하는 죄악감보다, 이 손을 조금 뻗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골짜기 아래로 밀어 떨어뜨릴 수 있다고 하는 우월감이 이겼다.
「음―. 부부의 일은 부부밖에 모른다는 말도 있잖아? 나한테 묻는 것보다 카나데쨩 본인이랑 한번 더 이야기해 봐야 하는 거 아닐까」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만....... 전화도 받아 주시지 않고, 메일의 답장도 그저 사과만 하실 뿐, 이유는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으십니다」
그 이유라면, 눈앞에 있는데.
「슈코 씨라면 카나데씨와 친하시니 무언가 짐작 가시는 게 없을까 하고...... 지푸라기에라도 매달리는 기분입니다. 사소한 것이라도 상관 없습니다. 무언가 짚이는 것이 없으신가요?」
짚이고 뭐고 완전 정중앙인데.
「아니, 그렇게까지 친하다고 할만한 건 아닌데」
「......그렇, 습니까? 전에 카나데 씨의 댁에 방문했을 때, 짧은 은색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어, 슈코 씨가 놀러 왔다고 카나데 씨로부터 들었습니다. 제가 아는 한, 카나데 씨는 웬만해서는 집에 다른 사람을 부르지 않는 분이라고 생각했기에」
아니 그거, 단서라기보다 확증이잖아.
둔하다. 너무 둔하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둔할 수 있는지, 슈코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남을 의심한다는 게 애당초 없는 뇌로 만들어져 있는 건가.
――아니, 이것이, 신뢰롸는 걸까.
순수한 마음으로 만들어진, 압도적인 신뢰.
――그래서, 카나데쨩은, 도망쳤구나.
슈코는 분명하게 카나데의 심리를 읽을 수 있었다.
「놀이 상대와는 키스하지 않는 주의야」
그렇게 선언해 놓고, 간신히 진심으로 마음을 담아 키스 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날 수 있었는데, 겨우 한 번 밖에 하지 못한 채 헤어지려 하고 있다.
깨닫고 만 거겠지.
마음을 담은 키스는, 마음을 통하게 한다는 것을.
통하게 되면, 알려져 버린다. 카나데의 몸에 새겨져 있는, 슈코의 자국을. 지금도 아직, 그것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외로움에 지고 마는 약한 자신이 알려지기 전에, 도망쳤다.
슈코는 꿀꺽 침을 삼켰다. 그런 소리마저 울리는 것처럼 들릴 만큼 회의실은 조용해져 있었다.
흥분한 목소리를 참으며, 슈코는 미소지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도 있지만, 말 그대로라고 생각해―. 지금은 카나데쨩 분명 어딘가 불안정한 거잖아? 그런 때 억지로 비틀어 열려고 해도 산산히 부서져 버릴지도」
산산히라는 말에, 후미카의 눈이 둥글어졌다. 카나데의 약함이나 위험함은, 이 둔감하기 그지없는 연인이라도 알고 있을 정도다.
「우선은 당분간 시간을 두고 봐. 조금 거리도 두어 보고. 그리고 진정됐을 무렵에 한번 더 서로 이야기해 보는 게 어떨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충고지만」
「시간을 두고....... 그렇, 군요.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으니」
「응응, 초조는 금물. 급할수록 돌아가라. 방심은 금물! 아, 마지막은 아닌가」
「......감사합니다, 슈코 씨. 조금,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저, 초조해 하고 있었습니다. 우선은 제가 제 자신을 냉정하게 바로잡지 않으면 안되겠네요」
그렇게 말하며 애매한 웃는 얼굴로, 후미카는 회의실을 뒤로 했다.
혼자서 회의실에 남은 슈코는, 당장이라도 가버릴 것 같은 카나데를 눈앞에 두었을 때와 비슷한 쾌감을 하복부에 느끼며, 당분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
다음날 밤, 슈코의 집에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슈코는 예상하고 있었다. 오히려 늦잖아 하고 생각했을 정도로.
「무슨 생각이야?」
표정을 잔뜩 굳힌 채 다가온 카나데는, 구두도 벗지 않은 채 현관에 서서 내뱉었다.
「성질 급하네. 우선은 들어와」
「질문에 대답해!」
언제나 냉정하고 여유롭게 행동하는 카나데가, 소리를 질렀다.
「이 집, 벽은 그렇지도 않지만, 현관은 꽤 소리 울리거든. 아이돌이 치정싸움 한다고 알려지면 곤란하잖아, 서로」
엷은 웃음을 떠올린 슈코가, 카나데의 손을 잡고 가볍게 자기 쪽으로 이끌자, 카나데는 마지못해 구두를 벗고 실내로 발을 디뎠다.
그 모습을 확인한 슈코는, 한층 더 입가를 올리며 빠른 걸음에 침실로 직행했다.
「자, 잠깐, 슈코?」
양손으로 슈코의 팔을 잡고 벗어나려고 하는 카나데를, 던지듯이 침대 위에 넘어뜨렸다.
「잠깐 기다려! 뭘 하려는 거야」
재빠르게 눌러 오는 슈코의 어깨를 밀며 카나데는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어―? 말 안하면 몰라?」
「몰라. 자신의 침대는 그녀 이외에는 사용하지 않게 하겠다고 했잖아. 그보다 그게 아니라! 어째서 후미카한테 그런 소리 했는지, 제대로 대답해!」
지금 당장 헤어질지 어떨지에 대한 대답은 하고 싶지 않다는 것. 슈코에게 상담해, 일단 서로 냉정한 상태가 되어 진정하고 난 후 다시 이야기해야 한다고 충고를 받았다는 것. 그러니까, 계속 기다리기로 정했다는 것.
그것들 전부를, 후미카는, 우직할 정도로 메일로 보냈다는 듯 하다.
예상대로의 전개였다.
「틀렸어? 친구로서는 완벽한 대답이라고 생각하는데」
말하면서, 슈코는 베개 아래에 숨겨 두었던 붕대를 꺼냈다.
「......붕대?」
「그래그래. 테이프도 필요없는, 붕대끼리 겹치면 탁 하고 멈추는 편리~한 녀석」
「다치기라도 했어?」
「나, 카나데쨩의 그런 가끔씩 보이는 열일곱살 다운 점, 정말 좋아해」
너무나 상황에 맞지 않는 것이 나오면 인간의 사고회로는 일순간 정지한다. 그 곤혹의 시간을 이용해, 슈코는 카나데의 양팔에 붕대를 감았다.
「......무슨!」
「깨닫는 게 느리네―」
붕대의 의미를 카나데가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카나데의 양손은 그녀의 머리 위에 놓여, 한손으로 위에서 가볍게 누르는 것만으로도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나, 네 새로운 취미에 어울려 줄만큼 한가하지 않아」
「이런, 기운차네. 뭐 아무튼 이젠 날뛸 수 없게 됐으니 천천히 이야기라도 할까. 뭐더라. 어째서 후미카쨩한테 그런 충고를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지?
그건 말야, 하고 계속하는 슈코의 웃는 얼굴에, 카나데는 처음으로 한기를 느꼈다.
「그렇게 하면, 카나데쨩이 더 사랑스러워질 거라고 생각해서야」
「무슨...... 내 얘기 진지하게 듣고 있어?」
「진지해」
슈코가 목소리의 톤을 뚝 떨어뜨리며, 비어 있던 손으로 카나데의 턱을 잡았다. 그 다음에 행해질 행위를 짐작한 카나데는 필사적으로 얼굴을 돌렸지만, 헛수고로 끝났다.
처음으로 맛본 카나데의 입술은, 매우 달았다.
「기다렸던 만큼, 굉장히 맛있네」
「저기, 슈코. 정말로 왜 이래? 뭐가 뭔지 모르겠어. 부탁이니까, 분명하게 설명을......」
「뭐가 뭔지 모르겠구나. 좋아. 그게 슈코쨩이 바라는 바야」
좀 더 엉망진창으로 뒤섞어 줄게.
그렇게 귓전으로 속삭여져, 카나데의 몸속에 오한이 달렸다.
마음이 무너질 것 같다.
갑자기 <친구>에게 배신당했기 때문은 아니다.
오한과 함께, 간과도 없을 만큼의 쾌감이 뛰어 돌아다닌 자신을 알아차려 버렸기 때문에다. 슈코의 손이 닿은 부분으로부터, 전신이 검게 물들어 가는 것 같았다.
다음으로 카나데가 무언가를 인지한 것은, 커텐 사이에서 아침 햇빛이 흘러들어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얼마 동안, 몰아세워져 있던 것일까.
도대체 얼마 동안, 자신도, 그 시간을 탐내고 있던 것일까.
하지만 마법이 풀리고 나면, 언제나의 아침이었다.
연인 이외에는 재우지 않는다고 호언했던 슈코의 침대에서 잠들었을 터인데, 혼자서 잠든 것과 다르지 않았다.
또, 혼자서 아침을 맞이해 버렸다.
방아쇠가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슈코는 카나데를 보내고 싶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틀림없다.
고이고 부패한 마음을 부딪혀 오는 것은 언제나대로여지만, 마침내, 삐뚤어져, 조이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부의 감정을, 온몸에 때려 붙이는 것 같았다.
그것이, 견딜 수 없을만큼 기분 좋았다. 쾌락이라든가 엑스터시라든가, 그런 멋진 말을 붙일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깨어나고 보면, 다시 고독감에 휩쓸린다. 오히려 카나데의 안에서 울리는 슬픔은, 강해질 뿐이었다.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과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대신, 옆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는 슈코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순간, 전신을 단단히 조이는 듯한 초조감이 들었다.
싫어. 그런 것정도로 만족하지 말아 줘. 그렇게 놀다가 지친 아이같은 순진무구한 얼굴을 보이지 말아 줘.
좀 더 격렬하고. 좀 더 강하고. 좀 더 더럽고. 좀 더 보기 흉한 사랑을.
그런 진흙같은 사랑으로, 이 외로움을 묻어 줘.
제발, 나와 함께 아침을―
아침으로부터도 슈코로부터도 도망치는 것처럼 이불로 머리를 감싼 카나데가, 지금 말할 수 있는 확실한 것은 하나 뿐이었다.
―이런 것, 후미카에게는 바랄 수 없어.
*
사기사와 후미카라고 하는 인간에게는, 그 겉모습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의 대담함과 행동력이 갖추어져 있다.
소중한 연인과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는 이미 상담했다. 그러므로, 조금 거리가 있는 사람에게도 물어 보자는 데 생각이 미쳤다.
나름대로 아이돌을 생업으로 하는 인간에게 있어, 연애 상담하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일 터이지만, 후미카가 가진 대담함과 행동력 앞에는 그런 상식 따위는 브레이크가 되지 않았다.
지난번 슈코를 불렀을 때와 마찬가지로, 사무소의 회의실 하나를 빌렸다.
그리고 이번의 상담 상대에게, 슈코 때와 같은 내용의 상담을 부딪혔다.
「흐흥― 과연. 최근에 카나데쨩한테서 재밌는 냄새가 나던 건 그 때문이었나~」
갑자기 불려가 연애 상담을 듣게 된 것은 이치노세 시키였다.
「하지만 좀 의외네― 카나데쨩이랑 후미카쨩 사이에서 그런 러브러브한 케미스트리가 태어났다는 느낌은 없었는데. 저기저기, 언제부터 언제부터? 역시 저번에 셋이서 유닛 짰을 때부터? 그때 빼았아 버렸다는 느낌으로?」
어딘가 즐거운 잡담이라도 하는 듯한 상태의 시키는 처음 보면서도, 후미카는 조금 안심감도 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관심은 3분도 가지 않고, 시시하다고 느끼면 실종해 버린다고 들어왔던 터라, 후미카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껴 준 것은 기뻤다.
「아뇨, 그보다 전부터입니다」
시키의 어조에 다소 영향을 받아, 후미카도 부끄러워하면서 대답했다. 마치 즐겁게 차라도 마시면서, 애인 자랑 이야기라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되었다.
「엣. 그랬, 어?」
하지만 후미카의 말을 듣고, 시키가 고양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하고 놀라는 것에, 후미카도 또한 놀랐다.
「상정외, 신가요?」
「에, 아니, 음....... 그렇게 되면 조금 내 전문외라고 할까」
「......전문외인가요?」
고개를 기울이는 후미카에 대해, 어째선지 시키는 여유가 없는 표정을 띄우고 있었다. 계속되는 말도 어딘가 미혹이 나타나고 있었다.
「과학과 냄새라면 천재 시키에게 맡겨라! 지만. 사람의 마음이 일으키는 화학 반응은 계산식이 확립되지 않아서 나라도 아직도 연구 부족이라고 할까」
「무슨 말씀이신지......?」
「헤롱헤롱한 미아 새끼 고양이를 라비린스에 안내해버릴 마음이 안 든다고 할까......」
긴 머리카락 끝을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리면서, 시키는 무언가를 주저하고 있었다.
「상관없습니다. 이미 이 이상 헤메는 일을 없으리라 단언할 정도로 혼란해 버렸는걸요」
시키의 미혹을 불식시키듯 후미카는 분명하게 말했다.
미혹이 없는 그 눈과 입가에 교대로 시선을 던지고, 이윽고 시키도 정면으로 후미카를 응시했다.
「그럼 가능한한 단적으로 말할게. 에또, 나는, 카나데쨩이랑 슈코쨩, 뭔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 그건 분명 후미카쨩이랑 사귀기 전부터. 그리고 후미카쨩이랑 사귄 후에도. 그러니까, 양다리 상태였다는 거 아닐까」
양다리.
후미카의 인생에 있어 전연 등장 예정이 없었던 단어의 출현에, 후미카의 눈이 헤엄쳤다.
「그것은......무언가 이유가 있는 추론인가요」
「근거라면, 나 한 번 냄새 맡은 냄새는 잊지 않거든―. 그리고 자주 카나데쨩이랑 슈코쨩, 같은 냄새 샴푸랑 바디로션 냄새가 나서, 사이 좋구나~ 하고 놀리기도 했고. 그치만 지금 생각하면 그 빈도, 사이좋은 사이끼리 빈도가 아니었지. 나중에는 슈코쨩한테서 카나데쨩 냄새가 나는 게 당연해져서 역으로 의식하지 않게 됐을 정도」
「그렇지만, 카나데 씨가 사용하고 계신 샴푸는, 조금 가격은 나가지만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는 것으로......」
후미카의 기댈 곳 없는 반론에, 시키는 손가락을 탁 튕기며 눈앞을 가리켰다.
「그래, 그거. 그렇지만. 지금 후미카, 그렇지만이라고 말했지. 그게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후미카의 마음이 거절반응을 일으킨 증거야. 보통 자기 애인이 양다리 걸치고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화내는 게 먼저 아니야? 카나데 씨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같이? 내 가설에 들어맞는 조각, 후미카도 이미 갖고 있는 것 아냐?」
조각이라고 비유한 시키의 표현은 확실히 정확했다. 후미카의 머릿속에서, 팟 하고 무언가가 맞춰지는 소리가 들렸다. 퍼즐의 완성되는 소리다.
――이전, 카나데 씨의 집에 방문했을 때, 짧은 은색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었다.
그렇게 말했을 때, 슈코의 반응에 조금 위화감을 품었다.
보통 친구의 연인의 집에 자신의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었다고 들은 경우, 다소나마 미안해 하는 것이 보통 아닐까. 「미안, 혹시 그래서 싸웠어?」 처럼, 자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 버리지는 않았나 걱정이 될 것이다. 후미카만큼 연애와는 소원한 인생을 걸어 온 인간조차 차근차근 생각하면서 깨달았으니까, 슈코라면 가장 먼저 입에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슈코는 곧바로 연애 상담의 대답으로 옮겨갔다. 그녀의 성격이라면, 낯선 머리카락을 찾아낸 것을 바로 정면으로 상대에게 물어본 후미카를 놀려도 이상하지 않은 것 같은 장면이었는데.
그 후, 후미카는, 제대로 시키에게 감사를 표했는지, 아니 어떻게 집에 돌아왔을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깨닫고 보니, 집의 침대 위에서 휴대전화를 쥐고 있었다.
*
「우리 집 주소, 비상연락망 같은 데 써 있었던가?」
갑작스런 습격에 슈코는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다.
슈코의 집 현관 앞에서 구두를 벗는 것도 아닌데 멈춰서 있는 것은 후미카였다.
「뭔가 데자뷰 같네」
슈코의 거듭한 헛소리에도, 후미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들어오지 말라고 해도 안될 것 같은 분위기네?」
「......여기서라도, 상관없습니다」
겨우 발해진 목소리에는, 명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것은 분노인가, 원한인가. 빨리 내용물을 보고 싶어서 날뛰는 마음을 꿀꺽 삼키며 슈코는 입을 열었다.
「이제야 들켜버린 건가? 후미카쨩, 너무 둔하다니까」
한층 더 어조를 가볍게 해 후미카를 부추겼다. 상대를 동요시켜, 풀어 놓고, 지켜보고 나서 이쪽이 어떻게 할지 판단한다. 평소의 슈코의 수법을 적용하려고 했지만, 후미카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렇, 군요. 슈코 씨는, 역시 그런 분이시군요. 생각치 못한 사태가 닥쳐도, 평상시의 스스로로 있으려 하는. 카나데 씨와 같기 때문에, 대면에서의 말의 교환에 둔감한 저라도, 위화감을 품을 수 있었습니다」
「응―? 무슨 소릴까―?」
「어째서 그 날, 카나데 씨와 교제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니까, 손을 당기라고 정직하게 말씀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거짓 조언을 할 필요성을, 저는 모르겠습니다」
어떤 경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드디어 후미카는, 스스로가 꽤 해답에 가까운 증거를 쥐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챈 듯 했다. 누가 힌트를 주었는지와, 후미카가 눈치채게 된 경위를 상상하니, 슈코의 입술이 비뚤어졌다.
―어디의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나이스 어시스트.
자신이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니, 후미카 혼자서는 절대로 생각이 미치지 못했을 테니까.
「아니아니― 시간이 해결하는 경우도 있다는 건 진심이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카나데쨩은 후미카쨩한테서 도망치고 싶어하는 마음이 강해진다. 그것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슈코쨩이 맛있게 먹는다. 어때? 만사형통 이잖아?」
엄지를 척 펴고 윙크까지 서비스했지만, 후미카로부터 리액션은 없었다. 예상 내의 행동이었기에, 슈코는 신경쓰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 애는, 뭐든지 지나치게 어렵게 생각해 버리니까. 그러니까, 심플하게 실감시켜 주고 싶었어. 카나데쨩은, 후미카쨩의 손으로 감당할 수 있는 아이가 아니야. 받아들일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고」
그것을 위해서, 후미카는 자신의 손으로 카나데를 몰아넣어 줄 필요가 있었다. 신뢰, 순수, 진심. 그렇게 불리는 깨끗한 것으로, 카나데의 도망갈 길을 빼앗기를 바랐다.
안고 있는 어둠마저 사랑해 줄 수 있는 것은, 같은 어둠을 안고 있는 슈코밖에 없다.
그렇게 통감시키려면 , 후미카가 뿜어내는 잔혹할 만큼의 빛이 필요했던 것이다.
「실제로 카나데쨩, 후미카로부터 기다리고 있다는 메일 받은 후에 나한테 왔어. 그리고, 키스는 연인에게밖에 하지 않는다고 선언했었는데, 그날 밤은, 몇 번이나 나랑 했어」
처음은 반억지로 빼앗았지만, 라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밀어 떨어뜨리는 거라면, 단숨에 떨어뜨려 주는 것이 최소한의 상냥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다.
그러나, 후미카는, 슈코의 예상 외의 행동으로 나왔다.
달려드는 것처럼, 슈코를 껴안아 왔던 것이다.
「후, 후미카쨩?」
일순 어딘가 찔린 것은 아닌가 하고 후미카를 떼어내려고 했지만, 후미카의 팔 힘은 겉보기와는 달리 강하고, 등에 돌려진 손은 상황에 맞지 않을 정도로 따뜻했다. 물론, 몸의 어디에도 아픔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카나데 씨는, 거울과 같은 분입니다」
「거울?」
「제가, 연인이란 어떠한 것인지. 친한 친구와는 어떻게 다른 것인지. 무엇을 해야 연인다운 것인지. 망설이고만 있으니, 카나데 씨도 마찬가지로 미로에서 헤매어 버리셨습니다. 그 사람은, 그렇게나 머리가 좋으시기엔, 지나치게 상냥하세요」
후미카가 어째서, 지금, 이런 태세로, 이런 이야기를 시작했는지 슈코로서는 짐작할 수 없었지만, 후미카가 하는 말의 의미는 알 수 있었다.
상대의 마음을 너무 지나치게 이해한다. 그러면서도, 상대의 마음을 바꾸려고 강요하지는 못한다.
슈코 스스로도 카나데에게 몇 번이나 말했던 적이 있다. 「좀 더 멋대로 굴어도 좋잖아」라고. 말해봤자 어쩔 수 없다고 알고 있는데, 그런데도 입밖에 내어 버릴 만큼, 안타까웠다.
후미카도 비슷한 안타까움을 느낀 것일까, 하고 슈코가 마음 속으로 생각한 것과 동시에, 후미카가 어깨 너머로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둬 주세요」
「......카나데쨩한테서 떨어지라는 이야기?」
「아니오. 슈코 씨, 도망치는 것은, 이제 그만두세요, 라는 뜻입니다」
「내, 내가?」
「네. 조금 전 슈코 씨는, 카나데 씨가 저로부터 도망치고 싶어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즉, 슈코 씨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도망치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슈코의 뇌리에 어떤 인물의 얼굴이 떠올랐다.
벚꽃이 잘 어울리는, 봄 그 자체와 같은 소녀의 얼굴이.
「상대의 기대에 응하고 싶다. 상대가 바라는 것을 주고 싶다. 카나데 씨는, 그것이 가능할 만큼의 명석함과 상냥함을 갖추고 계신 분입니다. 그래서,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슈코 씨의 소망을 따르고 계십니다」
「내 소망? 그런 걸 알 리가 없잖아」
내 자신도 모르겠는데.
그 말은, 위험하게 입을 헛디디기 전에 들이삼켰다. 부추길 생각었는데 어느샌가 반대로 부추겨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힘껏 후미카를 밀쳐냈다.
하지만, 재차 마주본 후미카의 눈은, 그 팔보다 강력했다.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사귀고 있는 사람에게서 떨어져, 자신의 곁으로 오면 좋겠다. 가능하면, 현재 교제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돌아갈 수 없다고 확신 할 수 있는 상태로, 자신의 물건으로 하고 싶다. 그것이 슈코 씨가 소망하는 것 아닌가요?」
역시 방금 전 껴안겼을 때, 칼을 꽂아 넣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착각할 정도로 슈코의 전신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사에에게는, 약혼자가 있다. 그러니 단념하자. 지금만의 즐거운 추억으로 하자. 도망치는 건 특기니까, 괜찮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괜찮지, 않았다.
싫었다. 포기할 수 없었다. 지금 뿐이라니, 무리였다. 도망칠 수 없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결혼도 할 수 없고, 기울어져 가는 집안을 구할 만한 재력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런데도 자신을 선택해 달라고 제멋대로 말할 용기가 없었다.
언젠가 약혼자의 존재를 알게 된 사에가 괴로워할 것이 분명했으니까. 아니, 그것을 말해도 계속 멀어져 갈 사에를 보고 싪지 않았다.
무릎부터 무너지듯이 그 자리에 주저앉은 슈코는, 숙인 채로 흘리듯이 중얼거렸다.
「진짜구나....... 진짜로, 카나데쨔은 거울이네」
카나데에게 말했던 것. 했던 것. 생각했던 것. 전부가 스스로에게 되돌아왔다.
고개를 숙인 슈코를 지지하는 것처럼, 후미카는 한번 더, 조금 전보다 상냥하게 껴안았다.
「괜찮습니다. 설령 그 음색이 슬픈 것이었다고 해도, 두 사람이 방출하는 파형이 닮았었기 때문에, 강하게 공명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슈코 씨와 카나데 씨는, 좋은 친구 사이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현관에 무릎을 꿇고, 스커트 옷자락이 더러워지는 것도 사양하지 않고, 자신의 소중한 연을를 빼앗으려고 한 연적을 껴안아 위로했다.
―완패, 구나.
슈코의 속에서, 파직 하고 무언가가 접히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이상할 정도로 맑게 울려퍼졌다.
*
드디어 해방된다.
후미카의 집으로 불려 가는 카나데의 발걸음은 의외로 가벼웠다. 슈코로부터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아, 여보세요? 카나데쨩? 지금 후미카쨩네 가고 있어?』
「......엣?」
어째서, 슈코가, 알고 있지.
『아―, 다행이다. 시간 맞췄네. 뭐랄까, 이 지경까지 헤메다니―. 역시 나, 이런 건 취향이 아니네』
「자, 잠깐, 슈코?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아니―, 나로선 카나데쨩을 행복하게 해 줄수 없다든가. 후미카쨩한테는 이길 수 없다든가. 뭔가 여러가지 멋진 말 생각하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배가 아파서』
「잠깐, 슈코. 잠깐 기다려」
슈코의 말의 의도를 전혀 이해할 수 없어, 카나데의 발걸음이 멈췄다.
『미안, 카나데쨩. 나 역시 사에쨩이 좋아』
멈춰선 앞은 벌써 후미카의 방 앞이어서, 슈코가 말을 끝낸 것과 거의 동시에 후미카가 현관문을 열었다.
이 방에 온 것, 얼마만일까. 아직 한달도 지나지 않았을 텐데 묘하게 오랜만인 느낌이었다.
카나데는, 바닥에 놓여 있던 쿠션 위에 앉았다.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소파였지만, 거기에 앉기에는 불편했다.
그곳은, 후미카와 처음으로 키스를 했던 장소였으니까.
카나데의 망설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 잔의 머그컵을 양손에 들고 부엌에서 돌아온 후미카는, 컵을 바닥에 놓고 카나데의 옆에 앉았다. 어깨가 닿을락말락한 절묘한 간격을 사이에 두고.
「카나데 씨. 방금 전의 전화, 슈코 씨로부터였나요?」
갑자기 돌진해 온 주제에 카나데는 일순 당황했지만, 조금 안심하기도 했다. 이 분위기에 잡담으로 시작하는 것도 괴로울 뿐이다.
「맞아, 하지만. 후미카, 혹시 슈코랑 무슨 이야기 했어?」
「네. 만나서 직접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와 만나기 전부터, 카나데 씨와 슈코 씨에게 육체관계가 있던 것. 그리고, 저와의 교제가 시작된 후에도 그 관계가 계속되고 있던 것」
카나데는, 갑자기 따귀를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것, 전부, 슈코로부터......?」
「네」
무슨 문제라도? 라고 말할 듯한 표정으로, 시원스럽게 후미카는 대답했다.
슈코 본인이 자백해 버린 것이라면, 이제와서 아무런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시야가 비뚤어져, 하나의 검은 덩어리가 되어, 거기에 빨려 들여갈 것 같았다.
알려지고 싶지 않았다. 단순한 변덕으로 경박한 여자의 놀이에 빠져든, 젊은 혈기 정도로 생각해 두고 싶었다.
양다리를 걸치고, 그것도 그 상대가 자신의 친구라는 가혹한 상처는, 후미카와 같은 온화하고 성실한 인간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해며, 카나데는 계속 필사적으로 속였다. 이유를 모르면 모를수록, 괴로워하는 시간은 길어질 것이다. 그래도, 모르면 지지 않아도 되는 상처도 있다. 시간은 싫어도 흐르고, 지나가, 퇴색한다. 하지만 상처는 언제까지고 치유되지 않는 것도 있다.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카나데의 소원은, 슈코라면 무겁게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라면, 어디까지고 시치미를 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것이 특기인 인간이었을 것이다.
어째서.
카나데의 머릿속에는 그 세 글자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저, 카나데 씨. 하나 물어 봐도 괜찮을까요?」
후미카의 질문에, 카나데는 무언으로 수긍했다. 이렇게 된 이상, 가감없는 마음을 부딪혀 주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어떤 비난도 받아들일 각오를 굳혔다.
그러나, 후미카는, 천진하게 말했다.
「여기서, 함께 살지 않으시겠습니까?」
「......엣?」
얼굴을 돌리고 숙이고 있던 카나데가, 놀란 나머지 엉겁결에 후미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하늘 같기도, 바다 같기도 한 그 푸른 눈과.
「슈코 씨가 말씀하셨습니다. 카나데 씨는, 무엇이든 지나치게 어렵게 생각해 버리신다고. 어쩌면 저도 어렵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연애 등과는 인연이 먼 인생이었기에, 과도하게 준비하고 있었던지도」
그럴 것이, 카나데 씨는 거울이시니까요, 하고 작게 웃는 후미카를 뒷전으로, 카나데는 아직 충격으로 뇌가 징 하고 저린 채였다.
「자, 잠깐만. 거기서 왜 같이 살자는 이야기가 되는 거야? 나, 양다리 걸쳤던 거라고? 또 그런 짓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야?」
카나데의 말에, 이 날 처음으로 후미카의 표정이 흐려졌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카나데 씨와 슈코 씨의 관계를 알게 되었을 때는 어디엔가 갇힌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그것은 자기 자신 쪽에서 다른 것을 모두 가둔 것과 같았습니다. 아무 것도 듣고 싶지 않다, 아무 것도 알고 싶지 않다고」
아아, 역시 그렇게 되어 버렸는가 하고 카나데가 한탄하는 것보다 빨리, 후미카는 말을 연결했다.
「그러나, 알고 싶지 않다 따위는 저답지 않습니다. 저는, 알고 싶습니다. 설령 아무리 괴롭고 슬픈 결과라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슈코 씨와 직접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심플한 답을 찾아냈습니다」
「......어떤?」
「그런데도 저는 카나데 씨와 함께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타인이 분류한 타입이나, 타인이 정의한 감정 같은 것은 저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생각만은, 제가 스스로 찾아낸 것입니다」
그렇게 말을 자른 후미카와 다시 한 번, 눈이 마주쳤다.
스스로 벽을 찢고, 그렇게 잡은 용기를 품은 눈동자와.
떳떳하지 못해서, 마음이 괴로워서, 무서워서, 계속 보는 것을 피하고 있었다. 그래서 깨닫지 못했다.
바라고 있던 것은, 처음부터 곁에 있었는데.
카나데의 안에, 투명하면서도 따뜻한 색이 울렸다.
「이게, 후미카의 음색이구나」
흘러넘치는 눈물조차, 따뜻했다.
「맑은, 푸른 하늘 같은 음색이야」
「제 마음, 닿았습니까?」
「응. 내 한가운데에, 울려퍼지고 있어」
「여기서부터, 시작하지 않으시겠나요. 오늘까지의 카나데 씨가 쌓아올리신 것 전부를, 저는 받아들이겠습니다. 완력에는 조금 자신이 있으니까요」
여기에 완력은 관계없지 않을까, 하고 웃은 순간, 카나데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려 멈추지 않게 되었다.
카나데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것보다 먼저, 후미카가 팔을 뻗어 껴안았다.
한 번 자신의 벽을 찢어낸 인간의 팔은, 강하면서도 상냥했다.
「고마워....... 고마워, 후미카. 용서해 줘서.....」
「아니에요, 카나데 씨. 사랑하는 거랍니다. 당신의 과거도, 그리고 미래도」
그렇게 말하며, 마음과 말을 함께 겹친 후미카의 입술은, 카나데의 마음을 풀어 갔다.
이제는 마음이 통하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지금도 이따금, 꿈 속에서, 어린애 같은 카나데가 「누군가. 제발, 누가. 도와줘」 하고 울부짖는 밤도 있다.
하지만 그런 때는, 용기를 내서 눈을 떠 본다.
이제 카나데는 알고 있으니까. 누군가의 이름을.
「후미카, 사랑해」
희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새근새근 잠든 연인에게 입을맞춘다.
그러면, 그 푸른 눈이 얇게 열리고, 일순간만 미소지어, 그리고 다시 감긴다. 반쯤 무의식적으로, 카나데를 껴안으면서. 그렇게 상냥함에 안겨, 카나데도 다시 잠든다.
사랑의 공명은, 이제, 그치지 않는다.
【덤】
슈코는 최근 기습 공격을 너무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탄했다. 아무리 자기가 뿌린 씨앗이라고는 하나, 적어도 좀더 마음의 준비 정도는 하게 해줘도 되잖아, 하고 듣는 이 없는 불평을 마음 속으로 되뇌이고 있었다.
「무엇 하시는 건가요? 어서, 앉아 보시어요. 저 이후에 일이 있으니 시간이 없사오니」
오늘의 적수의 이름은 코바야카와 사에.
위험, 위험, 하고 마음 속에서 몇 번이나 중얼거리면서, 슈코는 별로 넓지도 않은 집안을 전력으로 달렸다.
그 후, 카나데로부터 후미카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고 전화로 들었다. 「거기까지 한번에 갔어?」 하고 무심코 슈코가 놀라자, 카나데는 「나도 놀랐어」라며 웃었다.
이번 소동에 있어, 후미카는 모조리 슈코의 예상을 빗겨갔다. 솔직히, 후미카가 어떤 언동을 취할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
하지만, 거의 무관계라고 할 수 있는 사에에게, 이러쿵저러쿵 하는 소리를 듣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후미 뿐만이 아니라 카나데도 마찬가지로. 형편 좋은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믿고 싶었다.
믿고 싶었지만, 그렇게 예의나 법식을 중시하는 사에가 연락도 없이 방문했다고 하면, 짐작가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소파에 앉은 사에의 옆에, 최대한 거리를 두고 앉았다. 그 명백한 곤혹에도 개의치 않고, 사에가 입을 열었다.
「허면, 단도직입적으로 갈까요. 제가, 슈코 항의 여동생 같은 것 되고 싶지 않다고 말했던 것, 기억하고 계시어요?」
「네, 물론!」
등을 쭉 펴며 대답하는 슈코에게, 꼼짝도 웃지도 않고 사에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저, 슈코 항이 생각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제대로 여러 가지 알고 있사와요. 모두가 숨기려고 하는 혼약자에 대해서도」
「.......에?」
「도쿄에 와서 일하기 전에, 그 댁의 큰 도련님과 이야기해 두었어요. 결혼은 없는 것으로 하자고, 서로 약속해서」
「에?」
「큰도련님이라고 해도, 이미 20대 후반인 분이시니 좋아하는 분 한명 정도는 있지 않사와요? 하고 물으니 갑자기 고개를 숙이시며.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아주면 좋겠지만 자기는 게이라고」
「에?」
「그러하니, 결혼할 무렵이 되어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의절당할 각오로 커밍아웃 하겠다고 말씀하셨어요」
「뭐? 에? 에?」
「그래서 저는, 슈코 항이랑 헤어지지 않겠다고 각오를 결정했던 것이어요...... 처음이었사와요, 스스로 고백하는 것......」
위험.
당혹 뿐이던 슈코의 머리에, 간신히 「?」 이외의 단어가 떠올랐다. 슈코에게 위험을 알리는 단어가.
그 얼굴은 위험. 위험하다.
「카나데쨩이나 후미카쨩한테 들었어?」
사에의 눈물에는 절대로 거역할 수 없다고 통감한 그 날 이후, 어떻게든 그것만은 회피해 왔다. 그러니까 지금도 필사적으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설령 스스로 핵심에 접하게 되더라도.
「네에. 두 분이, 당신의 연인은, 당신이 언젠가 약혼자와 결혼한다는 것을 신경쓰고 있다고 가르쳐 주셨어요. 하지만 이것으로 이제 오해는 풀렸지요?」
사에의 말로부터 헤아리기에, 슈코와 카나데가 어떤 관계였는지, 후미카에게 무엇을 했는지까지는 폭로되지 않은 것 같았다.
폭로는 하지 않고, 그저 슈코와 사에의 등을 밀어 주었다. 카나데는 차치하고서라도 후미카에게는 그럴 만한 의리도 없는데.
둘의 마음씀을 헛되게 할 수는 없다.
「응....... 나도, 사에랑 가벼운 마음으로 사귈 생각은 조금도 없었어」
「알고 있사와요. 카나데 씨도, 당신을 너무 소중히 했을 뿐이니까 이해해 달라고 말씀하셨사와요. 하지만......」
사에의 말에 따르면, 카나데는 하나 더 사에에게 충고를 보낸 듯 했다.
―그런 타입은 확실히 말하지 않으면 안돼. 그러니까 이렇게 말해 봐. 당신에게 들으면 분명히 효과가 있을 거야.
생긋 봄 햇볕과 같은 미소를 지었는지 하고 생각하니, 깊게숨을 들이마쉬고, 사에는 소리쳤다.
「슈코 항, 바―――― 보!」
우아함을 체현한 것 같은 그녀가, 귀를 뚫을 듯한 볼륨으로, 「바보」라고 말했다.
효과는 있었다.
터무니없게 효과가 있었다.
슈코가 그것을 실감하는 것이 먼저였는지.
아니면사에의 입술을 빼앗은 것이 먼저였는지.
「바보라니, 처음으로 말했어요......」
힘이 다 빠진 것처럼 슈코의 가슴에 기댄 사에의 몸은, 역시 카나데보다 압도적으로 작고 가냘펐지만, 강했다.
「나, 사에쟝한테 처음인 것만 시키는구나」
「......하오나, 첫 입맞춤은 슈코 항 쪽에서 해 주셨네요. 그걸로 용서해드릴게요」
「......고마워」
두 번째는, 어느 쪽부터랄 것도 없이 거듭했다.
서클 카나후미문고와 서클 츠키노우라가와의 합동지 con amore에서 리조넌트 블루 부분만 발췌. 원작 리조넌트 블루는 2016년작. 번역에 사용한 판본은 카나후미문고의 총집편 카나후미 아오하루.
이윽고 내 가슴도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정체불명의 절박하고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가 내 내부에서 일어다. 나는 나를 소리쳐 부르는 존재가 누구인지 알았다. 혼자 있을 때면 어김없이 이 존재는 끔찍한 예감들과 견딜 수 없는 두려움과 격정에 사로잡혀 내가 해방해 주기만을 기다리며 내 안에서 울부짖었다.
나는 서둘러 내 길동무 단테를 폈다. 그 두려운 악마의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 그것을 몰아내기 위해서였다. 페이지를 뒤적이며 여기저기서 한 행, 혹은 3행 연구를 읽다가 한 연을 통째로 외워 보려고도 했다 그 불타는 듯한 페이지들에서 저주받은 자들이 절규하며 기어오르고 있었다. 암벽의 중간쯤에는 상처받은 영혼들이 험준한 벼랑을 미친 듯이 오르고 있었앋. 좀더 위에서는 축복받은 영혼들이 에메랄드빛 벌판을 반짝이는 반딧불처럼 움직였다. 나는 이 무시무시한 운며의 집을 가장 높은 곳에서부터 가장 낮은 데까지 돌아다녔다. 나는 천당과 지옥과 연옥을 내 집인 양 드나들었다. 나는 그 장엄한 시행들에 빠져들어, 고통에 신음하거나, 열렬히 희망하거나, 지고의 행복감을 맛보았다.
( Βίος και Πολιτεία του Αλέξη Ζορμπ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