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1. 18:24ㆍ:: Library/번역
서클 암흑통신단의 언제나의 논평/해설집. 평소에는 되게 서브컬쳐한 주제만 다루고 있어서 지나치다가 재밌어 보이는 주제길래 집어들었는데, 생각한 거랑은 좀 많이 달랐다. 이거 표지 말고 아이돌마스터랑 관련 있어?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세간에 횡행하는 [샤니마스의 런칭 시기와 코로나 확산 시기가 맞아떨어져서 샤니마스 2차창작 및 샤니마스 자체의 인기에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에 대한 통계적인 검정을 기대했는데, 그보다는 코로나와 동인문화 전반에 대한 당위적인 이야기였다. 뭐 나름대로 신선하긴 했다. 나라면 모수 열일곱개 가지고 양적연구를 하느니 인터뷰를 중심으로 질적연구를 하고, 그걸 입증하는 형식으로 객관식 문항을 통한 회귀분석을 돌렸겠지만. 그리고 약소서클과 대형서클, 남성향 동인과 여성향 동인, 대규모 행사와 소규모 행사에는 양적 문화적 차이가 상당해서 그걸 구분하고 돌리면 훨씬 상관계수가 잘 나올거라 생각한다. 최근의 큰 변화로, 어디까지나 종이매체의 통판을 중심으로 한 위탁서점과 달리 작가가 직접 디지털판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팬박스 등 후원서비스가 동인문화에 미친 영향을 따져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 같고.
이래저래 아쉬운 부분이 많았지만 동인문화에 걸친 흔한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는 부분이 보여서 일부러 번역했다. 대표적이니 게 동인지는 돈이 된다는 것인데, 본문에 경비 계산도 있지만 약소 서클은 절대적으로 적자일 수밖에 없고, 100부 이상 팔리는 중형 서클도 경비를 제하면 +- 제로에 가까운 것이 보통이다. 그림으로 밥 벌어먹고 사는 수준의 작가가 아니고서는 동인지는 어디까지나 취미 활동이다. (요즘 세상에도) 이차창작으로 돈을 버는 건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서 수익금은 전부 기부하거나 다음 책 인쇄비로만 쓰는 사람도 있고.
본문에서는 동인지 즉매회의 교류의 장으로서의 기능을 중시했는데, 종종 동인지를 통판이 아닌 회장에서만 배포하거나, 버릴 때는 내용이 보이지 않도록 찢어서 버려 주세요 등의 문구를 넣는 것도 비슷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동인지 즉매회까지 올 사람이면 기본적으로 "동인 문화"에 대해 유대감을 갖고 있거나, 유대감까지는 아니라도 최소한 이해 정도는 갖고 있는 사람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동인지를 접했을 때의 비판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 소위 "동인 문화"라는 것도 사람마다 정의가 다르겠지만, 가장 밑바닥에 있는 코어하고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것만 꼽자면 "동인이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대로 만드는 것"이라고 할까. 아이마스적으로 말하면 저희 사무소는 이렇답니다, 당신의 사무소는 어떠신가요.
아무튼 나의 이스터 섬은 벌써 말라 버리고 그 유산만으로 탑을 쌓고 있는 나지만, 이건 탑이 아니라 제단임을 재차 주지해야 할 것이다.